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와타나베 히사노부 (문단 편집) == 여담 == [[파일:external/livedoor.blogimg.jp/db926bd4.jpg]] 현역 시절에는 큰 키와 슬림한 몸매, 잘생긴 얼굴로 여성팬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구단 기숙사를 떠나 아파트에서 자취를 시작한 뒤 어느 여성 열성팬이 계속 초인종을 누르고 밤새 기다렸다는 일화도 있다.] 그러나 [[탈모]]가 시작되면서 여성 팬들의 인기는 점차 줄어버렸고, 말년에 대만에서 활동하던 시절 대만 [[포장마차]] 음식에 빠진 것이 원인이 되어 체중관리에 실패하면서 지금은 전형적인 [[대머리]] [[과체중]] [[아저씨]]가 되었다는 슬픈 일화가 있다. 훗날 감독 시절 선수들에게도 "지금은 믿을 수 없겠지만 옛날에 꽃미남으로 알려졌다"고 자학적으로 농담을 했다. [[http://mashlife.doorblog.jp/archives/52379330.html|#]] 1980년대 후반, 리그 라이벌이었던 [[긴테츠 버팔로즈]]의 주포인 [[랄프 브라이언트]]에게 매우 강했다. 브라이언트도 은퇴 후 한참 지난 일본 야구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가장 힘들었던 상대를 묻자 주저 없이 와타나베 히사노부의 이름을 이야기 했을 정도. 하지만 1989년 긴테츠의 시즌 우승을 결정 지은 세이부 vs 긴테츠의 더블헤더에서 나온 전설적인 '브라이언트의 4연타수 홈런' 중 세번째 홈런[* 더블헤더 첫번째 경기로 이 경기의 결승타였다]을 얻어 맞아 한동안 크게 실의에 빠지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모리 마사아키]] 감독이 동점인 상태에서 경기 후반에 돌입하자 "기세를 타고 있는 브라이언트를 막을 자는 히사노부 밖에 없다"라는 심정으로 불펜에 투입한 것이기 때문. 이 경기와 바로 다음 경기를 연달아 패함으로써 세이부는 리그 5연패를 놓치고 말았다. 만약 이 해에 우승을 했더라면 85년부터 시작된 리그 10연패라는 기록이 가능했기에 세이부 선수단과 팬들에게는 너무도 아쉬운 부분이었을 듯.[* 참고로, 일본 시리즈에서는 85년 vs 한신 패배, 86년 vs 히로시마 승리, 87년 vs 요미우리 승리, 88년 vs 주니치 승리, 90년 vs 요미우리 승리, 91년 vs 히로시마 승리, 92년 vs 야쿠르트 승리, 93년 vs 야쿠르트 패배, 94년 vs 요미우리 패배 라는 성적을 올렸다. 요미우리 V9과 함께 NPB 역대 최강의 황금 시대로 세이부 라이온즈의 8~90년대를 꼽는 것이 무리도 아닌 것이다.] [youtube(TPydXTXEgBA,width=640,height=360)] '''랄프 브라이언트의 대형 홈런과 멘탈 나간 와타나베 히사노부'''[* 첫번째, 두번째 홈런은 당시 선발이었던 곽태원으로부터 였다. 솔로 - 만루홈런의 순서] [[메르세데스-벤츠]]를 애용했으며, 당시 팀 내에는 프랜차이즈 최고참이던 [[도이 마사히로]][* 긴테츠와 세이부에서 활약한 강타자로 통산 465홈런-2452안타를 기록했다. 삼성 라이온스, 세이부, 주니치에서 타격코치를 맡았다. 세이부 타격코치 시절 본인과 같은 18세 4번타자인 [[기요하라 가즈히로]]의 성장에 기여했다.]와 [[히가시오 오사무]] 외에 벤츠를 타서는 안된다는 암묵적인 룰이 있었지만, 그 룰을 깨고 벤츠를 구입했다고. 그 이후 후배 선수들이 잇따라 벤츠를 구입하여 "내가 벤츠 해금의 선구자가 됐다"고 말하고 다녔다고 한다. 입단 당시 감독이었던 [[히로오카 타츠로]]의 관리야구를 좋아하지 않았다. 와타나베 본인조차, 관리를 싫어하는 자유분방한 성격이었기 때문에 "나중에 감독이되면 절대로 저런 관리같은 건 하지 않는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예전 팀 동료였던 [[쿠도 키미야스]]와 [[기요하라 카즈히로]] 한테서 "프로 야구 투수로는 최고의 존재"라고 높이 평가 받았다. 중학교 시절부터 흡연을 하는 등 자기관리가 썩 뛰어나지는 않았음에도 폐활량은 남들보다 뛰어났으며, 근육도 강해서 한 시즌 200이닝 이상을 던져도 경기 후 전혀 마사지를 받지 않은 일화가 있는 등 뛰어난 신체능력으로 야구를 했던 스타일. 기요하라는 팀 후배인 [[키쿠치 유세이]]와의 대담에서 와타나베 감독과 [[시오자키 테츠야]] 코치를 극찬했다. 프로 입단 다음 날 [[하라주쿠]]에서 쇼핑을 즐겼고 옷 구입비용으로 한달에 30만엔을 지출했으며, 디스코에서 춤추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등 이전의 프로야구 선수의 전형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 '[[신인류]]' 세대 선수란 평을 들었다. 모리와 노무라는 라이벌이지만 전혀 다른 스타일이라고 평하고 있다. 모리는 선수들의 성격을 잘 파악하고 잘 돌보며, 질책이 잘 통하는 선수와 통하지 않는 선수를 구분하여 대응하며 선수들이 야구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과 잘 플레이할 수 있을지에 대해 항상 고민하고 실행했다고 한다. 노무라는 심리전에 능해 말빨로 선수들을 설득할 수 있고 '아!이 사람은 정말 놀랍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각주] [[분류:일본의 야구 선수]] [[분류:일본의 야구감독]][[분류:1965년 출생]][[분류:키류시 출신 인물]][[분류:1984년 데뷔]][[분류:2001년 은퇴]][[분류:우투우타]][[분류:우완 투수]][[분류: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은퇴, 이적]][[분류: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은퇴, 이적]][[분류:야구 단장]]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